특별 인터뷰
만나고 싶었습니다
“아는 게 힘이에요. 미리 준비하고 있어야 기회가 옵니다”
화법의 대가, 전영우 아나운서클럽 고문을 만나다
“아나운서는 언어의 전문가입니다. 전문가는 그 분야의 최고가 되어야지요. 준비하고 있어야 기회와 왔을 때 실력을 발휘할 수 있어요.” 여전히 저술과 강연을 계속하고 있는 전영우(全英雨・89세) 원로 아나운서는 지난 12월 8일에 자택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의 방송 인생과 연구 생활을 회고하면서 공부와 준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나운서 30년, 대학 강단 30년 동안 책을 읽고 자격증을 따고 학문적 배경을 갖추면서 그때그때 준비하다 보니 아나운서, 교수, 저술가, 강연가로 일할 기회가 계속 이어져 왔다고 증언했다. 인터뷰 내용을 요약 기술했다. 자세한 육성 인터뷰의 내용은 첨부한 동영상을 통해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이날 인터뷰는 이현우 클럽 부회장이 진행했다.
방송 입문과 훈련
초등학교 시절(1946년), 라디오를 통해 민재호 아나운서의 ‘민주주의 해설‘을 들으면서 아나운서에 대해 막연한 동경을 하게 됐고, 해설위원을 겸하고 있던 윤길구 아나운서의 방송을 따라 하며 해설위원의 꿈을 꿨다고 한다. 대학 시절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연설과 대화‘를 강연하면서 스피치의 자신감을 얻게 돼 아나운서가 되기로 결심하고 1953년에 KBS 수습 아나운서로 입사했다. 신입 아나운서 시절 콜사인의 HLKA 발음으로 동료와 의견이 엇갈릴 때,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방송이니 ’에이치엘∽케이에이‘가 아니라 ’에이엘케이에이‘로 발음해야 한다”고 주장한 일, 통신 기사 ‘워싱톤발’을 ‘워싱톤부터’가 아닌 ‘워싱톤에서’로 해야 한다고 논쟁을 벌인 일, 윤길구 선배 아나운서로부터 ‘의’ 발음에 대해 지적받은 일 등을 통해 아나운싱과 발음의 기준을 세우는 게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한다.
뉴스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서울신문학원에 진학해 저널리즘을 배웠고, 뉴스의 일인자가 되기 위해 연주하듯이 방송하는 ‘뉴스의 리사이틀’ 개념을 시도했다. <재치 문답>과 <유쾌한 응접실> 등 공개 방송과 토크쇼를 진행하며 유머와 순발력을 훈련했다. 축구 캐스터 최승주 선배 아나운서가 축구협회 이사를 겸하고 있고, 양대석 아나운서가 농구 심판 자격증을 갖고 중계하는 것을 보고 스포츠 중계의 전문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해외 전문 잡지를 구독했다. 축구의 3B 이론인 ‘Body Balance, Brain, Ball control’을 최초의 국제심판이었던 김덕준 해설자보다 먼저 소개하는 등 공부하는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노력한 사례도 소개했다.
방송과 학문
말만 잘하는 아나운서보다는 말하기의 배경과 말하는 법도 아는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1962년 미국 스피치학회에 가입했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이었다. ‘스피치’란 용어를 처음 사용하며 『스피치 개론』이란 책을 펴냈고, 대학 교재로서 학문적 가치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좀 더 연구해 『화법 원리』를 펴내자 몇 개 대학에서 강의를 요청해 왔다. 30년 대학 강단의 시작이었다. 방송 이론서가 없는 것이 아쉬워 『방송 개론』을 번역 출판했고, 발음 지도서가 없던 1962년에는 프린트물 형태의 『발음 사전』을 처음으로 펴냈다.
1960년 성대 대학원에 입학해 유럽의 스피치 교육사 연구로 논문을 썼고, 발음을 체계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음성학의 대가 정인섭 박사가 있는 중대에서 박사 과정을 이수하며 어휘 65.000개의 『표준 한국어 발음사전』을 펴냈다. 60여 권의 화법 관련 저서와 역서를 출판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아나운서로서, 화법 학자로서 경험하고 연구한 결과였다. 화법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1998년에 ‘한국화법학회’를 창립하자 아나운서 후배들도 들어와 동역자로서 연구에 동참하고 있다고 했다.
*전영우 아나운서의 저서
화법 강의와 강연 30년
아나운서 30년의 경험이 대학 강단과 화법 강연에 큰 밑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방송 현장에서 이론을 연구하고 실무를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18년간의 명지대 강사 생활을 끝내고 수원대학교에서 전임교수 생활을 시작했다. 신문학원을 이수한 학력이 있어 대학 신문사 주간을 맡을 수 있었다. 교무처장과 학생처장, 인문대학장 등의 보직도 맡아 성공적으로 미션을 완수했다. 그것은 오랫동안 뉴스를 진행하면서 체득한 다양한 업무 처리의 노하우를 활용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최근에 『배우의 연기 수업』을 펴낼 수 있었던 것도 중대, 동국대, 서울예대에서 연기자, 성우 들을 대상으로 오랫동안 ‘무대 화법’을 강의했던 결과이다. 신구, 강부자, 정동환 등도 수업을 들었다.
화법 관련 책을 여러 권 내자 경제 단체와 기업체에서도 강연 요청이 들어왔다. 능률협회를 시작으로 생산성 본부, 금융기관, 대기업 등에서 ‘세일즈 화법’을 강연했고 사법연수원, 정당 훈련원 등에서 ‘연설과 대화’를 주제로 10여 년 이상을 강연했다. 정치인을 대상으로 설득 화법을 강연할 때는 번역서를 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레토릭』 이론을 많이 활용했다. 설득 기술로 세 가지를 꼽았는데 첫째, 에토스(Ethos), 즉 말하는 사람의 인격・인품・정신이고, 둘째는 파토스(Pathos), 정서적 공감이며, 셋째는 로고스(Logos), 논리적 체계임을 강조했다고 했다. 특히 말에는 그 사람의 인격이 드러나기 때문에 ‘입이 말하는 게 아니라 인격이 말하는 것’을 강조했다.
DBS에 근무하던 시절 작사가로 활동할 기회를 얻었다. 길옥윤 작곡, 패티 김 노래의 ‘사랑의 계절’의 노랫말을 작사했고(가명을 사용했는데 최근에 저작권 인정됨), 최영섭 작곡 ‘익어가는 계절’도 노랫말을 지었다. 그런가 하면 몬트리올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양정모 개선의 노래’, 걷기 캠페인 노래 ‘걸어서 가자’ 노랫말도 지었다.
후배들에게
현역 후배들에게는 “준비하고 자격을 갖추고 있으면 꼭 기회가 옵니다. 남이 안 하는 분야를 꾸준히 개척해 자신만의 분야를 확보하는 게 중요해요” 퇴직한 후배들에게는 적성에 맡는 일을 찾아 봉사의 기회를 갖도록 하라고 조언했다. 스피치 분야는 지금도 늦지 않았다면서 화법 연구 60년의 결과가 압축된 『스피치 아트, 우리말 화법』을 활용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며 권하며 인터뷰를 마무리 했다.
(정리: 김성길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