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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만나고 싶었습니다

“정신이 또렷하고 목소리가 지금처럼만 나온다면

계속 방송하고 싶어요. 하하하”

​이성화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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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4일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있는 관악공동체라디오(관악FM) 스튜디오를 찾았다. 그곳에서 만난 85세 ‘흰머리 소녀’ 이성화 선배의 목소리는 여전히 또랑또랑했다. 아나운서클럽 모임에서 뵙던 원로 아나운서의 분위기가 아니었다. 인터뷰할 곳의 위치와 조명 같은 제작 환경을 미리 확인하고 준비하는 에너지 넘치는 커리어우먼이었다. 

이성화 선배는 라디오 방송 경험을 살려 서울 관악구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송출하는 비영리 라디오 방송 ‘관악FM(100.3㎒)’에서 17년째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 초창기에는 다문화 가정을 위한 우리말 회화 프로그램을 2년간 진행했다. 그러다 전공을 살려 시니어 대상 프로그램 <쾌지나 청춘> DJ 자리를 맡았다.

<쾌지나 청춘>은 이 선배를 비롯한 교사, 가수, 언론인 출신 등 총 6명의 액티브 시니어들이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월~토요일 오전 6시부터 한 시간 동안 진행되는 주간 프로그램의 월요일 방송을 책임지고 있다.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인터뷰 코너에서는 기획과 섭외, 취재, 원고 작성까지 담당하는 1인 다역의 이른바 ‘아나듀서’역할도 하고 있다. 방송이 끝나면 인터뷰 내용과 사진을 블로그에 올리는 일까지 한다. ‘인생은 아름다워’ 코너를 통해 지금까지 600명의 초대 손님을 만났다고 한다.

천직 같은 방송과의 인연은 우연에서 비롯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에서 생활하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1959년 부산MBC의 방송요원 모집 공고를 보고 "배짱 좋게 응시한 게" 합격하면서다. 방송 경험이 전혀 없는 신입 아나운서가 입사 후 3개월 만에 공개방송을 진행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 후 1961년에 서울 MBC, 1964년에는 RSB-TBC로 옮겨 방송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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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부산MBC 시절, 뒷줄 왼쪽 두 번째가 이성화 아나운서, 그 옆에 윤미자 아나운서, 앞줄 가운데 전응덕 보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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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MBC 시절, 노래자랑 공개방송 진행 중인 이성화 아나운서

TBC에서 방송의 꽃을 피웠다. 재치 있고 순발력이 좋다고 소문 난 덕분에 당시 생방송 스케줄이 잡힌 PD들에게는 섭외 1순위 아나운서였다. 게다가 당시 발간되던 잡지 「아리랑」에서 진행한 아나운서 인기 순위 조사에서 당당히 1위를 거머쥐기도 했다. 당시 인기 교통 정보 프로그램인 <가로수를 누비며>를 1980년까지 진행했고, 현재 최장수 라디오 프로그램인 KBS 제2라디오 <밤을 잊은 그대에게> 초대 DJ를 1964년부터 1972년까지 8년 동안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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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C초기(라디오서울) 신년하례식. 왼쪽부터 주수광,이성화,최계환 실장,원종관,박병학,이장우,윤미자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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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잊은 그대에게> 진행하는 이성화 DJ

그러던 이 선배가 1980년 갑자기 마이크 앞을 떠났다. 남편의 반대 때문이었다. 이후 방송에 대한 욕심, 재능, 외부의 인정을 모두 던져두고 30년을 주부로 살았다. 방송에 대한 아쉬움은 오랜 기간 떠나지 않았다. 마침 소출력 라디오 방송 ‘관악FM’이 전국 최초로 시작되면서 재능기부를 통한 방송 복귀가 이루어져 현재까지 쾌지나 청춘을 만끽하며 제2의 방송 인생을 즐기고 있다.

1959년부터 시작된 이 선배의 ‘방송 인생 이야기’를 ‘전인석’ 아나운서의 육성 인터뷰를 통해 보고 들을 수 있다. 아나운서 입사 시험 관련 에피소드, 3·15 마산 의거 방송 뒷얘기, 미스코리아 후보 캐스팅에 얽힌 일화, 프로그램 진행 경험, 요즘의 근황 등 다양한 스토리를 링크된 동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편집자 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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