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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제공: Ilya Pavl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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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한마디

지난 발자취는 아름다운 추억이려니...

김병래

김병래 정현숙 88서울올림픽.jpg

공채2기 (문공부)
경성대 스피치지도교수
등단시인
부산시인협회 심의위원장

'88서울올림픽 정현숙 해설위원과 함께'

돌이켜 보건대 나는 어려서부터 예체능에 남다른 재능과 소질이 있었던 것 같다. 하여 학창 시절에는 글짓기  대회며 그림 그리기 대회에 나가 곧잘 특선 이상의 상을 받기도 했고 한때 육상, 축구, 배구 선수로도 활약해 제법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이는 아나운서 생활을 하면서도 계속 이어져 조기 축구선수로서도 활약했는가 하면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즐겨 진행하기도 하고 시와 수필로 한국 문단에 등단은 물론 미술 작품도 전국 공모전에 응모해 특선내지 특별상을 다수받기도 했다.

 
그와 함께 스포츠 중계방송에도 큰 뜻을 품고 축구, 야구, 배구, 농구, 핸드볼, 씨름, 탁구 등 모든 종목에 걸쳐 로컬로 TV와 라디오로 중계방송을 즐겨했으며 그중 축구와 야구는 서울 아나운서들과 어깨를 나란히하며 전국 중계방송을 곧잘 해 나름대로 인정을 받기도 했다. 이로 인해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지역아나운서로서는 유일하게 스포츠 중계방송 아나운서로 차출돼 약 1개월간 서울에서 근무하는 영광을 얻기까지 했다. 그 당시 서울에서 나의 근무는 처음부터 스포츠중계방송을 배당받아 하지 않았고 오전 11시 10분부터 정오까지 그날의 올림픽 경기를 중심으로 이모저모를 알아보는 프로그램을 맡아 서울 아나운서실의 유애리 아나운서와 함께 진행하는 방송을 주로 했다. 나의 주 종목인 축구, 배구, 농구 등의 중계방송은 기라성 같은 서울 아나운서들의 파워에 밀려 좀처럼 차례가 오지 않았다.

김병래 달리기.jpg

'KBS 전국사원체육대회 달리기 1등 모습'

그러던 중 어느 날 서울대학교 체육관에서 열리고 있는 탁구 중계방송을 하라는 업무 지침이 내려져 나는 하늘을 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었다. 그러면서 한편 난생처음 라디오로 그 빠른 경기를 중계방송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어서 무척 고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방송을 통해 나의 능력을 만천하에 떨치고자 하는 욕망이 생겨 연 이틀 동안 오전 방송을 마치고 곧바로 서울대학교 체육관을 찾아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고 실지 방송에 임했다. 그때 탁구중계방송은 준결승전으로 한국의 유남규 선수와 스웨덴의 발트너 선수와의 경기로 세인의 관심이 컸던 경기였던 만큼 중계방송 비중도 매우 컸었다. 다행히 해설자로 전 국가 대표 탁구 선수였던 정현숙 위원이 배정이 되어 서로 호흡이 잘 맞아 신바람나게 중계방송을 잘 마무리했던 것으로 안다.
 

중계방송은 오후 4시부터 오후6시까지 무려 2시간 동안 걸렸으며 물리고 물리기를 거듭한 끝에 유남규 선수가 3 대 2로 극적인 승리를 했었다. 손에 땀을 쥐면서 중계방송을 하던 때를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고 나에겐 횃불처럼 큰 자랑으로 남아 있다.
 

그런 보람된 추억을 뒤로하고 2004년 정년퇴임 후에는 부산 시내 각 대학 사회교육원과 공무원 교육원 등 관공서와 학교, 사회단체에서 스피치 강의를 하면서 그림그리기와 글쓰기를 꾸준히 하며 전국시낭송대회 심사도 보고 때로 각종 문화 행사 때 사회도 보며 즐겁게 세월을 보내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무수한 발자취를 남기게 마련이다. 그 발자취를 생생하게 아로새겨주는 것은 아마도 사진첩에 남아 있는 값진 사진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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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처: (사)한국아나운서클럽
소재지: 서울특별시 양천구 목동동로 233(목동, 한국방송회관 15층 3호)

메   일: announcerclub@naver.com

發行人: 이계진

編輯長: 임병룡

編輯委員: 유지현, 윤지영, 노영환, 권혁화, 전찬희, 하지은

제   작: ㈜나셀프 마이온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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