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말 우리글
우리말 다듬기(26)

미래예측 실패로 끝난 한글 풀어쓰기와 문자혁명
김상준
언론학박사
(전) KBS아나운서실장
(전) 동아방송대 교수
최근 한국 아나운서 100년사를 기획하면서 아나운서들의 뉴스방송에 대한 수난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그 중의 하나가 프린트 원고가 아닌 손으로 쓴 뉴스 원고에 대한 이야기이다.
1980년대 중후반까지 KBS를 비롯한 각 방송사는 인쇄한 원고가 아닌 손글씨 원고로 3장을 한꺼번에 쓴 원고가 주류를 이루었다. 특히 KBS는 정오뉴스를 앞둔 취재 기자들이 최종 원고를 쓸 때 1TV와 2라디오, 그리고 사회교육 뉴스 순서로 모두 3장을 생산해야 했다. 이때는 얇은 원고 석장을 들고 둘째 장과 셋째 장 사이에 묵지(墨紙)를 한 장씩 끼워 넣은 뒤 꾹꾹 눌러 쓴다. 대개는 볼펜으로 쓰는데 힘이 없으면 셋째 장은 흐리게 나오니 힘을 넣어야 한다. 아무리 힘을 주어도 둘째 장은 흐린 편이고, 셋째 장은 덧칠을 하지 않으면 판독이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제2라디오나 사회교육방송 정오뉴스는 경험이 많은 아나운서라야 전달이 가능했다.
이런 악몽의 시대는 8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었다. 우리나라 토종 워드프로세서인 ‘한글’의 역사가 시작되면서 깨끗한 원고에 프린트 된 뉴스를 받아들고 환호했던 기억이 새롭다. 한글 워드는 LG그룹의 전신인 금성사 계열의 금성소프트웨어에서 ‘하나워드’가 나오고, 삼보컴퓨터에서는 1985년 ‘보석글’, 삼성그룹에서는 1989년 ‘훈민정음’을 발표했었다. 한글 워드프로세서로 작성된 원고를 보면서 필자는 많은 생각을 했었다. 우리 한글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초성 중성 종성으로 나눠진 4각형 글자이기 때문에 가로로 쭉 풀어서 쓰는 영어 알파벳이나 일본어 가나문자에 비해서 타이프가 어려운 글자로 인식했었다.
그러나 우리 한글의 특징을 잘 살린 타자기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한 선각자인 공병우(公炳禹, 1907~1995)박사 등이 이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공병우는 안과의사 이자 국어 학자였다. 그는 한글전용과 한글 기계화와 전산화에 공헌한 분이다. 이런 선각자들의 노력으로 오늘날 우리 한글은 영어 알파벳이나 일본어 가나에 비해 훨씬 빠른 속도로 타이핑할 수 있게 됐다.
한 때 남북한이 함께 쓰고 있는 한글이 하마터면 문자혁명으로 인해 남북한 언어가 완전히 바뀌는 큰 변화를 겪을 뻔했었다. 20세기 초 타자기로 한글을 입력하려면 당대의 기술력으로는 모아적기를 구현하기에 어려움이 많았었다. 이 때문에 인쇄와 문서 작성의 용이성을 이유로 일부 학자들이 풀어쓰기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주시경은 1908~1909년 무렵 가로 풀어쓰기를 고안해서 책으로 내기도 했다. 현재 풀어쓰기라고 하면 주시경의 제자인 최현배가 고안한 방식을 주로 일컫는다. 영어 알파벳처럼 ‘한글’을 풀어서 <ㅎㅏㄴ ㄱㅡㄹ>로 표기하고 이것을 다시 4가지 글자체로 만들어서 사용하도록 문자혁명을 주장한 것이다. 이들 학자들은 한글 24자를 영어 알파벳처럼 인쇄체 대문자와 소문자, 필기체 대문자와 소문자처럼 네 가지 글자체로 풀어서 써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만일 그렇게 됐다면 남북한을 막론하고 지금처럼 문맹자가 거의 없는 문자해독 능력을 갖추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거기다가 네 종류의 글자를 배우는 시간 낭비는 물론 인쇄소의 기능을 바꿔서 더 복잡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신문이나 잡지, 서적을 비롯한 모든 출판물들을 새로운 형태의 글자로 바꾸고, 상품의 포장과 광고판, 길거리 안내판 등을 바꿀 때의 비용이 얼마나 들 것인가 생각하면 아찔하다.
최현배(1894~1970)가 1963년에 쓴 한글가로글씨독본(정음사 발행, 사진참조)의 머리말에 보면, 해방직후에 삼백여명으로 조직된 한글 가로글씨 연구회에서 고안했다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한글가로글씨는 다행히도 정부에 의해 채택이 되지 않았다. 북한에서도 주시경의 제자인 김두봉(1889~1958?)을 중심으로 한 문자혁명에 대한 학자들의 연구가 이어졌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북한에서는 1964년 1월 3일 북한 김일성이 언어학자들과 나눈 담화에서, 자신은 문자개혁을 반대한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은 요지의 말을 한다.
“남조선과 북조선 사람들이 서로 다른 글자를 쓰게 되면 편지를 써 보내도 모르게 되고 신문, 잡지를 비롯한 출판물들도 서로 알아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조선인민의 민족적 공통성을 없애며, 결국은 민족을 갈라놓는 엄중한 후과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문자개혁론자인 그들은 문자개혁만 보고 민족이 갈라지는 것을 보지 못하였습니다.”(북한의 언어정책, 국립국어연구원, 1992)
후과는 뒤에 나타나는 좋지 못한 결과로 북한에서 많이 쓰는 말이다. 남북한이 비슷한 시기에 문자혁명을 했다면, ‘민족이 갈라지는 비극’을 맞이하고, 세계의 학자들이 감탄하고 있는 한글의 우수성은 대단히 큰 상처를 받았을 것이며, 국민들은 엄청난 혼란을 겪었을 것이다. 컴퓨터에 의한 IT(Information Technology)시대를 예측하지 못한 결과이다.

사진을 보면서 현재의 한글과 비교하기 바란다. 사진 좌측은 1971년 최현배의 사후 정음사에서 인쇄한 최현배의 ‘한글 가로쓰기 독본’(총 208p.) 중 7p.이다. 한글 스물 넉자의 인쇄체인 큰 박음(대문자)과 작은 박음(소문자), 필기체인 큰 흘림(대문자)과 작은 흘림(소문자)의 한글 자모이다. 이 책에는 많은 예문이 실려 있는데, 우측 위는 이 책 70~71p. ‘소경과 절름발이’라는 전래동화를 필기체 소문자로 인쇄하고, 아래는 현행 한글로 나타낸 것이다.
사진에 나타난 인쇄체나 필기체로 쓴 뉴스원고를 보면서 아나운싱한다고 생각해 보자. 뉴스는 1분에 350음절 내지 370음절을 표출한다. 가로쓰기 글씨로 뉴스가 가능하려면 연습에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주시경, 김두봉, 최현배의 미래예측 실패와 함께 실패로 끝난 문자혁명에 감사할 뿐이다. 최현배는 이 책의 꼬리말(편집후기)에서 이 책의 활자는 처음에 일본 도쿄에서 제작하고 후에 선미인쇄와 동아출판사에서 이루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