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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미소’만 남은 공영방송, ‘고양이’를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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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모(KBS 전략기획실 기획부장) 
KBS 법조팀장 역임 
서울대학교 작곡과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卒

#1. 1906년 크리스마스이브. 미국 보스턴 남쪽의 브랜트록이라는 작은 바닷가 마을에서 바이올린 소리가 울려 퍼졌다. 바이올린을 연주한 사람은 캐나다 출신의 발명가 레지널드 페센든(Reginald Aubrey Fessenden, 1866~1932). 성탄 전야의 캐럴은 이 남자가 만든 장치를 통해 대서양을 항해하던 상선에 전달됐다. 이 소리를 들은 선원들은 매우 당황했는데, 이전까지 무전기를 통해 들려오던 소리란 모스 신호음이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성경 구절을 읽고(하늘엔 영광, 땅에는 평화), 성탄 인사를 전한 뒤(메리 크리스마스!) 12월 31일 밤 다시 방송으로 신년 인사를 하겠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1시간가량 지속된 생방송을 마쳤다. 우리가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라디오 방송이다.

#2. 약 100년이 흐른 2005년 4월 23일. 26살 청년 자베드 카림(Jawed Karim, 1979~ )은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동물원에서 찍은 19초짜리 동영상을 자신이 새로 만든 인터넷 사이트에 업로드했다. 코끼리 앞에 어설프게 선 채로 코끼리가 ‘진짜 진짜 진짜로’ 길고 멋진 코를 가졌다고 말한 것이 전부였다. 그의 뒤엔 건초를 뒤집어쓴 아시아코끼리와 하얀 상아를 드러낸 아프리카코끼리가 서 있었는데, 코끼리들은 이 청년이 그들의 긴 코를 칭찬하든 말든 상관없는 눈치였다. 이 동영상은 청년이 만든 인터넷 사이트에 게시된 첫 콘텐츠로 남게 됐다. 동영상의 제목은 ‘Me at the zoo’, 사이트의 이름은 유튜브다.

한 세기만큼의 시차가 있었지만 두 사건은 모두 역사의 물줄기를 바꿀 만큼 위력적이었다. 특히 20세기는 지상파 텔레비전을 중심으로 한 매스미디어의 시대였다. 페센든의 크리스마스 방송 이후 약 20년 뒤 영국에선 세계 최초의 공영방송 ‘영국방송공사(BBC, British Broadcasting Corporation)’가 탄생했다. BBC의 모델은 전 세계에 수출되었고 수십 년 뒤 대한민국에도 수입되었다. 이 기간 지상파 방송사들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위대한 방송의 역사를 써 내려갔다.

인터넷 방송의 등장… ‘방송’의 정의부터 흔들어

카림은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하는 사람들도 동영상을 업로드하거나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고자 했다. 그의 곁엔 페이팔 출신의 채드 헐리(Chad Meredith Hurley, 1977~ )와 스티브 천(Steve Chen, 1978~ )이 있었다. 이들은 의기투합해 차고를 사무실 삼아 유튜브를 설립했다. 투자를 받으며 성장한 유튜브는 2006년 11월 구글에 매각되었고 세 청년들은 억만장자가 되었다. 2025년 현재 시점에서 유튜브의 성공 스토리를 장황하게 언급하는 것은 지면 낭비일 뿐이니 넘어가자. 다만 유튜브와 텔레비전방송을 비교하기 전에 짚어봐야 할 일이 있다. 우리가 쓰고 있는 ‘방송(broadcast)’이란 말의 의미다. 우리나라 방송법 제2조는 방송을 이렇게 정의한다.

“방송”이라 함은 방송프로그램을 기획·편성 또는 제작하여 이를 공중(개별계약에 의한 수신자를 포함하며, 이하 “시청자”라 한다)에게 전기통신설비에 의하여 송신하는 것.

전기통신설비는 지상파와 케이블, 위성 등 전통적 방송망을 뜻하는데 이 정의에 따르면 ‘유튜브 방송’은 방송이 아니다. 그것은 전기통신설비가 아닌 ‘정보통신망’에 의하여 전달되므로 적어도 방송법이 정의하는 방송의 범위에서는 벗어나 있다. 유튜브 방송은 방송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무 의미 없는 시대이긴 하겠으나 여기엔 중요한 함의가 있다. 유튜브 방송은 주파수 할당을 두고 정부가 개입할 여지도 없고, 지상파 방송처럼 공공재의 특성(비배제성과 비경합성)을 갖지도 않는다. 당연히 방송법에 따른 규제도 받지 않는다. 하지만 완성된 콘텐츠는 지상파의 그것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그것이 방송이든 아니든 오늘날의 시청자들은, 아니 이용자들은 방송과 방송 아닌 동영상 콘텐츠를 차별 없이 소비한다. 미디어 콘텐츠 시장의 무한 경쟁을 의미하는 ‘미디어 빅뱅’은 이런 배경에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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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베드 카림의 ‘Me at the zoo’ 동영상 갈무리 >

전쟁터 같은 미디어 시장… ‘양’과 ‘질’ 압도하는 OTT

이 같은 콘텐츠의 전쟁터에서 공영방송 KBS를 포함한 전통적 방송사들은 유튜브와 같은 뉴 미디어의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우선 유튜브는 압도적인 콘텐츠 물량을 자랑한다. 유튜브에는 1분마다 500시간 분량의 동영상이 업로드 된다. 하루로 따지면 72만 시간 분량의 동영상이 올라가는데, 쉽게 말하자면 매일 82년 분량의 비디오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KBS가 창사 이래 만든 모든 방송물을 합쳐놓아도 유튜브에서 불과 하루에 생성되는 동영상보다 적은 양이다.

“불과 100년 사이 공영방송을 둘러싼 거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 1억 개가 넘는 채널을 가진 유튜브와도, 콘텐츠 제작에 매년 수십조 원을 쏟아붓는 넷플릭스와도 경쟁해야 한다. 방송산업의 진입장벽도, 과점체제도 모두 무너졌다.”

시선을 넷플릭스로 돌리면 더욱 치열하다. 2025년 3월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폭싹 속았수다’의 제작비는 편당 약 37억 원, 총 600억 원이다. 이는 KBS 드라마센터의 1년 예산을 웃도는 엄청난 금액이다. 넷플릭스와 쿠팡플레이는 예능 프로그램도 만든다. KBS의 간판 프로그램인 ‘1박 2일’이나 ‘개그콘서트’가 넷플릭스의 ‘흑백요리사’나 쿠팡플레이의 ‘SNL코리아’보다 재미있다고 누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오랜 기간 지상파 방송사들이 주도해온 스포츠 중계도 서서히 OTT 서비스로 넘어가고 있다. 2024년 11월 넷플릭스에서 생중계(라이브 스트리밍)했던 마이크 타이슨과 제이크 폴의 복싱 경기는 전 세계 1억 800만 명이 실시간 시청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독점 중계권을 거머쥔 쿠팡 플레이는 스포츠 중계 콘텐츠를 더 늘려가고 있다. 머지않아 우리는 넷플릭스로 올림픽 경기를 보게 될 것이다. 보편적 시청권을 주장하는 것이 이 변화의 흐름을 어느 정도로 지연시킬지는 미지수다. 

“최근 넷플릭스는 세서미 스트리트를 제작하는 비영리단체 ‘세서미 워크숍’과 배급 계약을 체결했다. 미국에서 가장 공공성이 큰 프로그램이 가장 상업적인 OTT 서비스 기업의 품에 안긴 것이다.”

이런 모든 변화를 간략히 보여주는 지표가 있다. 시청률 조사 기업인 닐슨은 2025년 5월 TV를 통한 유튜브·넷플릭스 등 OTT 스트리밍 이용률이 지상파와 케이블 방송 이용률을 뛰어넘었다고 밝혔다. 해당 기간 TV를 통한 스트리밍 이용률은 44.8%인데 비해 지상파 이용률은 20.1%, 케이블 TV 이용률은 24.1%에 그쳤다. 지상파와 케이블을 합쳐도 44.2%로 스트리밍 이용률보다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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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5월 TV와 스트리밍 서비스 시청 통계 (닐슨 홈페이지 갈무리) >

2025년 5월 스트리밍은 TV 시청률의 44.8%를 차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반면 방송(20.1%)과 케이블(24.1%)은 전체 TV 시청률의 44.2%를 차지했다.

‘세서미 스트리트(Sesame Street)’는 ‘미국의 학교’, ‘세상에서 가장 긴 거리’로 불리는 미국의 대표적 어린이 프로그램이다. 1969년 첫 방송 이후 4,500여 개 에피소드가 방영됐다. 도시 저소득층 아동들이 친근하게 느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은 할렘가의 빈민촌을 배경으로 한다. 초창기부터 흑인 캐릭터와 흑인 배우들이 등장했다. 세서미 스트리트는 당시나 지금이나 심각했던 인종 갈등과 좀처럼 좁혀지지 않던 교육 격차를 해소한다는, 그야말로 공적인 목적에 충실하게 제작되어왔다. 그런데 최근 넷플릭스는 세서미 스트리트를 제작하는 비영리단체 ‘세서미 워크숍’과 배급 계약을 체결했다. 미국에서 가장 공공성이 큰 프로그램이 가장 상업적인 OTT 서비스 기업의 품에 안긴 것이다. OTT는 역사적으로 공영방송사들이 짊어졌던 공적 책무를 어느 정도나 감당할 수 있을까? 만약 세서미 스트리트의 사례처럼 공적 역할을 충분히 담당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에서 제공된다면, 그때 공영방송에 남은 존재 가치란 무엇일까?

세서미 스트리트 품은 OTT, 공영방송 존재 이유 고민해야

영국의 작가 루이스 캐럴(Lewis Carroll, 1832~1898)의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엔 체셔 고양이가 등장한다. 항상 입이 귀에 걸리도록 웃고 있는 이 고양이가 사라지는 장면을 보자.

“좋아,”라며 고양이가 말하더니 이번엔 아주 천천히 사라졌어요. 우선 꼬리부터 사라지더니 끝으로 웃음이 길게 남으며 사라졌지요. 웃음은 고양이가 사라진 다음에도 한참을 그렇게 그 자리에 남아 있다 사라졌답니다.

앨리스는 “미소 없는 고양이는 자주 봤지만, 고양이 없는 미소라니!”라며 놀라워한다. 그런데 오늘날 대한민국의 공영방송은 ‘고양이 없는 미소’와도 같다. 20세기 초반의 기술적,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배경이 만들어 낸 위대한 콘텐츠와 막강한 영향력은, 마찬가지로 21세기의 기술적,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변화로 사라지고 말았다. 법조문에 남은 기능과 책무, 그리고 방송 종사자들의 머릿속에만 흐릿하게 새겨진 공영방송이라는 개념이 마치 체셔 고양이의 미소처럼 남은 건 아닐까. 우리는 고양이라는 실체를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을까.


불과 100년 사이 공영방송을 둘러싼 거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 1억 개가 넘는 채널을 가진 유튜브와도, 콘텐츠 제작에 매년 수십조 원을 쏟아 붓는 넷플릭스와도 경쟁해야 한다. 방송 산업의 진입장벽도, 과점체제도 모두 무너졌다. 유튜브 시대엔 시청자 한 명 한 명이 모두 미디어다.


이제 생존 전략을 넘어 공영방송의 존재 이유, 존재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 재정의가 필요하다. 그러한 재정의를 통해 공영방송만의 역할을 재규정하고, 공영방송만의 콘텐츠를 내놓아야 한다. 답을 찾기는 너무 어려운 상황이지만 서둘러야 한다. 체셔 고양이의 미소가 완전히 사라지기까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글을 마무리 하며..

지금까지 본 필자와 KBS전략기획실 양성모 기획부장이 짚어본 것처럼 공통분모로 귀결되는 점은 이렇다. KBS와 BBC, NHK등 세계 괄목 공영방송이 살아남기 위해선 ‘공영방송이 왜 존재해야하는가?‘하는 원론적 질문으로 다시 돌아온다. 다시 말해 공영방송이 살아남기 위한 조건 중 대 명제는 특히 우리나라 같은 경우, 정치적 독립과 신뢰의 회복이다. 이를 바탕으로 디지털 미디어 속 시청자 국민의 시대적 트렌드를 읽어내는 점이다.(방송미디어 수용자 주권시대임을 잊지 말자는 뜻이기도 하다.) 


이는 민간콘텐츠 시장과의 차별화를 꾀하며 공영방송만의 ‘공익성 콘텐츠’를 끝임 없이 탐구하고 개발해내는 책무를 의미하기도 한다. 나아가 방만한 조직의 혁신과 효율성 제고를 늘 염두에 둬야 할 것이며 시청자국민의 시대를 여는 ‘맞춤식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나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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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처: (사)한국아나운서클럽
소재지: 서울특별시 양천구 목동동로 233(목동, 한국방송회관 15층 3호)

메   일: announcerclub@naver.com

發行人: 이현우

編輯長: 임병룡

編輯委員: 윤지영, 노영환, 권혁화, 전찬희, 하지은

제   작: ㈜나셀프 마이온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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