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말 우리글
우리말 다듬기(25)

‘사례 차례’ ‘결례 실례’ ‘경례 장례’에서의
‘ㄹ’발음은 모두 다르다
김상준
언론학박사
(전) KBS아나운서실장
(전) 동아방송대 교수
아나운서 클럽 웹진 2024년 12월호 우리말 다듬기에서 한국어 표준발음법 제5항의 규정은 어문규범에서 획기적인 규정이라고 했었다. 획기적인 규정이지만 제5항 ‘다만 2’에서 ‘예, 례’ 이외의 ‘ㅖ’는 [ㅔ]로도 발음한다고 한 규정에 문제가 있다고 했었다.
제5항은 ‘계, 몌, 폐, 혜’는 모음 아래에서 단모음 ‘게, 메, 페, 헤’로 해도 된다는 다음과 같은 규정이다.
계집[계ː집/게ː집] 계시다[계ː시다/게ː시다] 시계[시계/시게](時計) 연계[연계/연게](連繫)
몌별[몌별/메별](袂別) 개폐[개폐/개페](開閉) 혜택[혜ː택/헤ː택](惠澤) 지혜[지혜/지헤](知慧)
그런데 필자는 여기에 ‘ㄹ’의 발음 ‘례’를 더해야 한다고 했었다. 우리의 현실발음에서 ‘ㄹ’은 발음의 어려움으로 문제가 많다. 특히 ‘례’는 더 어렵다. ‘례’는 둘째 음절에서 ‘가례, 사례, 의례, 차례’와 같은 말이 있는데, ‘례’를 이중모음 그대로 발음하는 것은 ‘계, 몌, 폐, 혜’를 이중모음으로 발음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그래서 제5항의 ‘다만 2’에 더해 다음 수정안처럼 ‘다만 3’을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다만 3. 모음 아래의 ‘례’는 [레]로도 발음한다.
가례[가례/가레](家禮) 사례[사ː례/사ː레](事例) 의례[의ː례/의ː레](儀禮) 차례[차례/차레](茶禮)
이렇게 하면 ‘례’발음의 혼란이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결례, 실례, 경례, 장례’등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이때의 ‘ㅖ’ 모음은 이중모음 그대로 있으면서, ‘결례, 실례’는 자음 ‘ㄹ’이 구개음 ‘ㄹ’로 바뀌고, ‘경례, 장례’는 구개음 ‘ㄴ’으로 바뀐다. 이때도 이중모음을 단모음으로 해서 오발음인 [경네] [장네]로 잘못 발음하는 경우도 있다.
아나운서 클럽 웹진 2024년 12월호에서도 ‘ㄹ’발음에 관한 문제를 몇 개로 나눠서 다뤘었다. 예를 들면 ‘난:로, 신라’ 등은 [날:로] [실라]처럼 설측음舌側音 ‘ㄹ[l]’로 발음한다고 했으며, ‘달력, 실력’ 등의 말은 구개음口蓋音 ‘ㄹ’[ʎ]로 발음한다고 했었다.
그러나 ‘결례’를 [결레], ‘실례’를 [실레]처럼 이중모음 ‘ㅖ’를 단모음 ‘ㅔ’로 잘못 발음하는 경우도 있다.
‘총리’와 ‘경리’도 ‘ㄹ’ 원음을 내거나, ‘ㄴ’ 의 원음인 설단음舌端音(blade)으로 내는 경우가 있다. 설단음은 한국어의 ‘ㄴ · ㄷ · ㄹ · ㅅ’ 등이 있다. ‘총리[총:니] 경리[경니]’의 ‘ㄴ’은 구개음 ‘ㄴ’[ɲ]으로 발음해야 한다. ‘ㄴ’ 구개음은 이밖에도 많이 있다. 첫음절에서의 ‘님’도 구개음이다.
이밖에 ‘어머니, 언니, 손님, 선생님, 입니다, 합니다’에서의 ‘ㄴ’도 구개음으로 발음한다. 그런데 ‘입니다’의 발음 ‘임니다[imɲida]’는 세 음절이 모두 유성음이어서 발음이 까다롭다. 한국어는 같은 유형의 발음이 겹치면 어려워진다. 더구나 ‘니’의 발음은 설단음 [ni]가 아닌 유성음으로 구개음인 [ɲi]가 이어지면서 더 어렵다.
‘설:날, 칼날, 한글날’에서 ‘ㄹ’ 뒤의 ‘ㄴ’은 설측음 ‘ㄹ’로 바뀐다. [설:랄], [칼랄], [한:글랄]처럼 바뀌는 것이다. 이중에서 ‘칼날’은 아나운서 클럽회보 2019. 6월호, 우리말 다듬기에서 다룬 적이 있다.
당시 제목을 ‘초등학교가 한국어 발음교육 발 벗고 나섰다’고 했었다. 2018년 초판을 발행하고, 2019년 2쇄를 발행한 초등학교 4학년 1학기 ‘국어활동’ 53쪽, ‘기초 다지기’에 나오는 한국어 발음관련 문제를 소개한 것이다.
일부를 소개하면 “‘ㄴ’이 ‘ㄹ’의 앞이나 뒤에 있는 낱말은 다음과 같이 소리 내어 읽고 소리 나는 대로 써 봅시다.” 하고 나서 <‘ㄴ’을 [ㄹ]로 소리 내야 해요.>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리고 문제를 “한라산[ ] 칼날[ ] 신라[ ] 연료[ ]”로 했다.
여기서 가장 어려운 말은 ‘칼날’이다. 초등국어 교과서에서는 칼날은 [칼랄]’과 같이 ‘ㄴ’이 ‘ㄹ’의 뒤에서 ‘ㄹ’로 소리 난다 고만 했었다. 이때도 [할:라산] [칼랄] [실라]는 ‘ㄹ’ 설측음으로 나고, [열료]의 ‘ㄹ’은 구개음이다.
초등국어 편수관들이 이만큼이라도 우리말 발음에 관한 관심을 가져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계속적인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우리말 발음에서 ‘칼날’은 물론이고 ‘설날, 한글날, 오늘날’ 같은 말들이 써놓은 대로 발음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단어 내부는 물론이고 단어와 단어 사이에서도 일어난다.
“물놀이, 불놀이, 일 났다. 발 냄새, 겨울나무, 아이를 낳았다. 하늘을 날았다. 갈 날이 많다. 손을 놓았다.” 위와 같은 말에서 ‘ㄴ’을 설측음 ‘ㄹ’로 하지 않고 ‘ㄴ’을 써놓은 그대로 발음하는 현상은 학교교육이나 방송에서 바로잡아 주지 않으면 고쳐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현상이 과거보다 더해지고 있는 것은 영어의 사용이 늘어나면서 일어나는 현상일 수도 있을 것이다.
영어에서는 “올 나이트 all night, 내추럴 넘버 natural number, 풀 네임 full name” 등에서 ‘l’ 뒤의 ‘n’이 자음동화 없이 제대로 발음된다. 이렇게 영어의 영향을 받으면서 써놓은 대로 발음하는 현상이 앞으로 더 많아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